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 실제로 르 봉이 군중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유일한 사상가는 아니지만, 서유럽의 정치인들과 파시즘을 내세운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3] 그 이유는 다른 사상가들은 "군중은 이렇게 나쁘고 저렇게 나쁘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이다."의 결론을 낸 반면 유독 르 봉만큼은 "군중은 이렇게 나쁘고 저렇게 나쁘다. 그러나 이 점을 권력자들이 잘 활용할 여지가 있다."의 결론을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르 봉의 관점을 취해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형법체계를 고안하거나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는 등의 현장 적용도 바로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개인 수준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독특한 심리적 현상을 막연히 일컫는 말. 르 봉과 다른 사상가들이 제안했으나, 이후 학술적인 정교화는 필립 짐바르도와 같은 인물들의 몰개성화(deindividuation)라는 개념으로 비로소 확실히 정립되었다.[4]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수용소 학대 사건이나 《루시퍼 이펙트》 같은 책들의 출간과 함께 종종 주목받으며 꾸준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르 봉의 개념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상실"(loss)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실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짐바르도나 초창기 사회심리학자들에겐 주체성 내지는 "자기다움"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20세기 중반 에릭슨이나 로키치 같은 연구자들이 볼 땐 "자기 정체성"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르 봉의 생각에 가깝게 옮겨 보자면, 군중 속에 진입하는 개인은 그들이 인식하는 세상과 관념 속에서 "나" 에 대한 감각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내가 없어지고 군중만이 남게 된다는 것.[5] 다시 말하면 익명성에 기대어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이를 르 봉은 군중에 침잠(submergence)한다고 불렀다.
르 봉에 따르면, 군중에 잠겨드는 개인은 "나" 에 대한 생각을 상실한 끝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고차원적인 이성과 규범, 현실 인식은 모두 사라진 후, 개인은 그저 그때그때 드는 충동과 감정, 욕구에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을 일체 생략한 채로 야수 떼처럼 아우성을 치며 자기 좋을 대로 난리법석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르 봉은 이 상황을 가리켜 전염(contagion)이라고 불렀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오싹함을 느낄 법하지만, 르 봉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사상가들이 미처 내놓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군중이 비단 야만인 떼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영향력에 크게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권력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간단한 말 몇 마디, 분노를 자아내는 상황, 센세이셔널하고 자극적인 사건, 주변 사람들의 행동, 이 모든 것이 개인을 의도치 않게 휩쓸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시위나 항쟁에서 연단에 선 지도자가 어째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 만일 이런 핵심 연사들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전례없이 통합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르 봉은 이를 암시(suggestion)라고 불렀는데, 19세기 말~20세기 초 무렵의 최면 열풍이 휘몰아치던 배경을 감안하면 굉장히 직관적인 설명이었다.[6] 평소라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비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이었겠지만, 일단 군중 속에만 들어가면 (평소에는 코웃음쳤을) 감정적인 몇마디만으로도 그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합리와 이성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군중심리는 역사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해 왔으며, 지혜있고 간교한 정치인들은 대중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사용해왔다. 그 결과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타인을 잘 꼬드기는 사람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중심리를 일으키는 데 성공하면 매우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 독일. 독일은 이 때문에 연방헌법수호청을 만들어 또 다른 나치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사회 전체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정당 해산까지도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많지만 대중의 뜻대로 무조건 따르면 다시금 나치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행동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견해.
이후 몰개성화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레온 페스팅어 등의 연구자들은[7] 집단 속에 소속된 개인이 더이상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만 대우받게 될 때 발생한다고 개념화했다. 이들은 르 봉의 유산을 직접적으로 물려받았지만, 오늘날 군중(crowd)이라는 단어가 학계에서 더이상은 쓰이지 않게 된 것은 이들이 첫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 역시 네브라스카 심포지엄에서 몰개성화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립하였으며, 이들이 70년대 이전까지 다져놓은 개념이 바로 몰개성화라는 현상, 더 폭넓게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게 된 일반적인 "군중" 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8]
아무튼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저건 군중심리다" 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다음의 기준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 충족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